2024.05.17 (금)
레이첼 씨 가족은 사고뭉치 반려견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몸은 밥풀을 한 손에 움켜쥔 것처럼 통통하고, 표정은 겨자를 먹은 것처럼 언제나 울상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초밥이(sushi)입니다.
얼마 전, 초밥이는 평소와 같이 자잘한 사고를 터트렸습니다. 물건을 쓰러트리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등 자신감 넘치는 댕댕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해왔던 일이었죠.
레이첼 씨는 초밥이가 저지른 난장판을 정리하기 위해 초밥이를 잠시 방 안에 격리해 두었습니다. 최소한 이번 사고를 수습하는 동안이라도 녀석이 추가 사고를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죠.
그런데 초밥이가 격리된 방 근처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 마이 그앗."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레이첼 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남편과 문을 뚫고 나온듯한 모양새의 초밥이가 있었습니다.
문에는 고양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작은 통로가 뚫려 있었는데, 그곳에 초밥이의 통통한 허리가 결린 것이죠.
초밥이는 짧은 앞다리를 슈퍼맨처럼 앞으로 쭉 뻗은 상태로 머리를 마구 흔들었습니다!
절망하는 남편을 모습을 보는 데 1초. 문에 낀 초밥이를 보는 데 1초.
"우읍... 푸하하!"
그리고 심각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폭소가 터지기까지 다시 1초가 걸렸습니다.
초밥이는 뒷걸음질로 몸을 빼는가 싶더니 좁은 고양이 통로를 향해 다시 뛰어들었고 또다시 머리와 앞발을 마구 흔들었습니다.
초밥이는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보며 웃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서글픈 표정으로 레이첼 씨가 꺼내든 카메라를 쳐다보았습니다.
사실, 이 고양이용 통로는 레이첼 씨 가족이 집에 이사 오기 전부터 뚫려 있던 것으로 지금까지 초밥이가 이 통로를 이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초밥이에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사 온 지 한참이 지난 그날에서야 녀석은 작은 통로에 몸을 던지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문을 열어주자, 초밥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높이 들고 자박자박 발톱 소리를 내며 우아한 걸음으로 부부 옆을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초밥이가 아무 일도 없다고 우기기엔 너무나도 분명한 그날의 영상이 담겨있습니다. 지금도 레이첼 씨는 SNS에는 초밥이의 굴욕적인 영상이 공개돼 있습니다.
"초밥이는 작은 통로 앞에서 자존심을 다쳤지만 결코 우아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박수받을 만한 일이에요. 물론, 체중도 잃을 생각은 없는 것 같지만요."
개무룩
글 제임수
사진 The Dodo
틱톡/root_s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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