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6 (월)
미카엘라 씨는 평소에 틈날 때마다 집안을 정돈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집안 정돈에만 오랜 시간을 쏟습니다. 기껏 청소해놓은 것을 다시 어지럽히는 방해꾼이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냥아치 기질이 가득한 고양이 그리펜입니다.
그리펜의 양아치 기질은 아기 고양이 시절부터 남달랐습니다.
빨래 건조대에 걸어놓은 수건은 죄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고, 조금 전까지 깨끗하게 청소해놓은 카펫 위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널려있곤 했죠.
잠시 한눈을 팔면 창문을 닦던 행주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네. 범인은 그리펜입니다."
그런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그리펜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닌자처럼 숨어 저를 지켜보고 있겠지요."
하지만 녀석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게 있었으니, 바로 식기세척기입니다. 미카엘라 씨가 식기세척기에 손을 얹자 어디선가 그리펜이 쏜살같이 달려 나옵니다.
미카엘라 씨가 방금 막 작동이 끝난 식기세척기 문을 열자, 따뜻한 수증기가 뭉게뭉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리펜이 눈을 반쯤 감고 코를 벌렁거리며 변태 같은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펜은 식기세척기 냄새에 중독됐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리펜은 식기세척기에서 나오는 수증기에 얼굴을 파묻을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짓습니다.
원래 미카엘라 씨는 식기세척기를 일주일에 두세 번 돌리지만, 수증기에 중독된 그리펜을 위해 매일 작동할 지경에 이르렀죠.
그녀가 집안일을 하는 데 오래 걸리는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녀 역시 이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죠.
"그리펜은 수증기에 중독되었고, 저는 그리펜의 표정에 중독되었거든요."
훔하. 훔하. 댕댕이 꼬순내도 훔하
글 제임수
사진 The D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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