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초보 집사들이 고양이를 키울 때 가장 당황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털입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서부극 영화의 단골 소재인 회전초 마냥 털 뭉치가 바닥 위로 굴러다니곤 하죠.
일본에 사는 고양이 `미니라`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니라를 모시는 집사는 굴러다니는 녀석의 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책 읽는데 조용히 좀 하세오' 집사의 웃음소리가 거슬린 미니라)
그러다 굴러다니던 털 뭉치가 미니라의 발바닥에 걸리는 걸 보며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미니라가 자신의 털을 신었네. 훗."
그 순간 집사의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스쳐 갔습니다.
(드디어 세상에 공개된 리미티드 한정판 슬리퍼)
"그래! 미니라의 털로 미니라에게 슬리퍼를 만들어 주는 거야!"
그때부터 집사는 털 뭉치가 소중한 옷감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털 청소는 귀찮은 일이 아닌 열정적인 취미가 되어버렸습니다.
몇 날 며칠 눈에 불을 켜고 집 안을 샅샅이 청소한 끝에 100g의 털을 모은 그녀는 곧장 슬리퍼 만들기에 들어갔습니다.
(자, 그럼 시착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요)
먼저 미니라 고객님의 발 치수를 조심스럽게 잰 후, 슬리퍼 밑창부터 조심스럽게 수작업으로 제작해나가기 시작했죠.
에르메스 장인이 한 땀 한 땀 조심스럽게 명품을 만들듯, 집사 역시 털 한 올 한 올 조심스럽게 가다듬어 말랑말랑하고 푹신한 슬리퍼의 모양을 다듬어 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명품 슬리퍼가 탄생했죠.
(발에 쏘옥- 고객님 착용감이 어떠신지요?)
집사는 젤리가 가득한 미니라의 발바닥에 슬리퍼를 신겨주며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미니라 고객님만을 위한 슬리퍼입니다."
난생처음으로 수작업 슬리퍼를 신은 미니라 고객님은 감동에 겨운 듯 양쪽 동공이 커다란 보름달처럼 확장되어 갔습니다.
(느낌이 이상해. 안, 안 사요)
하지만 미니라는 슬리퍼를 아껴 신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곧장 발을 흔들어 슬리퍼를 멀리 던져버렸습니다. 집사는 미니라의 마음을 헤아려 슬리퍼를 유리관 안에 넣어 잘 보관하기로 했죠.
물론, 사실은 미니라가 그 슬리퍼를 신고 다니지 않으리란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선물한 사람의 마음은 살짝 서운할 법도 하지만 집사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합니다.
"미니라의 표정은 매우 혼란스러워 보였어요. 저는 그것만으로 선물에 대한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재밌었거든요."
글 제임수
사진 Bored P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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