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맑음속초16.0℃
  • 맑음10.8℃
  • 맑음철원10.9℃
  • 맑음동두천11.3℃
  • 맑음파주8.8℃
  • 맑음대관령6.3℃
  • 맑음춘천10.9℃
  • 박무백령도9.7℃
  • 맑음북강릉15.8℃
  • 맑음강릉20.4℃
  • 맑음동해16.5℃
  • 맑음서울14.0℃
  • 맑음인천12.2℃
  • 맑음원주13.4℃
  • 맑음울릉도18.6℃
  • 맑음수원9.3℃
  • 맑음영월11.0℃
  • 맑음충주11.0℃
  • 맑음서산8.2℃
  • 맑음울진14.3℃
  • 맑음청주13.8℃
  • 맑음대전11.2℃
  • 맑음추풍령9.6℃
  • 맑음안동12.3℃
  • 맑음상주13.1℃
  • 맑음포항17.0℃
  • 맑음군산10.5℃
  • 맑음대구14.5℃
  • 맑음전주13.2℃
  • 박무울산13.1℃
  • 맑음창원14.3℃
  • 맑음광주14.3℃
  • 맑음부산15.3℃
  • 맑음통영13.6℃
  • 구름조금목포13.0℃
  • 맑음여수15.8℃
  • 구름많음흑산도12.1℃
  • 구름많음완도13.0℃
  • 맑음고창9.0℃
  • 맑음순천10.4℃
  • 맑음홍성(예)8.5℃
  • 맑음8.2℃
  • 구름많음제주15.6℃
  • 구름조금고산15.3℃
  • 구름많음성산13.0℃
  • 구름많음서귀포16.4℃
  • 맑음진주11.8℃
  • 맑음강화10.2℃
  • 맑음양평11.9℃
  • 맑음이천10.5℃
  • 맑음인제9.5℃
  • 맑음홍천10.8℃
  • 맑음태백9.2℃
  • 맑음정선군8.9℃
  • 맑음제천9.1℃
  • 맑음보은9.1℃
  • 맑음천안8.3℃
  • 맑음보령10.9℃
  • 맑음부여9.2℃
  • 맑음금산8.6℃
  • 맑음10.9℃
  • 맑음부안11.5℃
  • 맑음임실9.5℃
  • 맑음정읍10.3℃
  • 맑음남원12.4℃
  • 맑음장수9.1℃
  • 맑음고창군10.1℃
  • 맑음영광군9.3℃
  • 맑음김해시14.6℃
  • 맑음순창군11.1℃
  • 맑음북창원15.7℃
  • 맑음양산시13.1℃
  • 맑음보성군12.4℃
  • 구름조금강진군11.2℃
  • 구름조금장흥9.9℃
  • 구름많음해남9.2℃
  • 맑음고흥11.8℃
  • 맑음의령군12.8℃
  • 맑음함양군10.5℃
  • 맑음광양시15.5℃
  • 구름많음진도군9.3℃
  • 맑음봉화9.4℃
  • 맑음영주10.8℃
  • 맑음문경12.6℃
  • 맑음청송군9.0℃
  • 맑음영덕14.5℃
  • 맑음의성9.4℃
  • 맑음구미12.6℃
  • 맑음영천11.3℃
  • 맑음경주시11.6℃
  • 맑음거창10.2℃
  • 맑음합천13.0℃
  • 맑음밀양13.0℃
  • 맑음산청12.5℃
  • 맑음거제13.4℃
  • 맑음남해13.7℃
  • 맑음12.6℃
기상청 제공
'초속 2cm' 조금씩 느려지는 너의 발걸음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꼬리뉴스

'초속 2cm' 조금씩 느려지는 너의 발걸음

 

어깨가 앞으로 쭉 끌려 나간다. 보폭은 총총 참새 걸음. 혹여나 너를 놓칠까 손목에 줄을 두어 번 감아보지만, 자유가 줄어든 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내 발끝이 너의 뒤꿈치를 따라잡으면 너는 어김없이 앞으로 뛰쳐나간다. 줄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어깨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진다. 너와 연결된 줄은 언제나 팽팽했다.


그런데 그 줄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게.

 

batch_사진01.jpg

 

조금씩 느려지는 너의 발걸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팽팽하던 줄이 느슨해져 있었다. 축 늘어진 줄에 묻은 흙과 나뭇잎이 눈에 들어왔다. 줄을 잡은 손은 반동에 따라 앞뒤로 편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손에서 시작된 시선이 줄을 따라 로미의 목덜미에 다다르자, 그제야 늘어진 줄에 담긴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로미가 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로미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로미는 내 뒤에서 걷고 있었다. 뒤처진 로미는 나를 따라잡기 위해 발걸음을 바쁘게 재촉하면서도 거친 숨을 헐떡였다. 잠시 걸음을 멈추자 녀석이 엉금엉금 다가와 내 발밑에서 함께 멈췄다.


로미는 몇 번을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는 로미를 품에 안자 오른쪽 검지 손가락 아래로 요란하게 요동치는 심장이 느껴졌다.


18살 여고생 이로미. 사랑하는 내 여동생이 내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느리게 느슨해지는 줄처럼 로미의 발걸음도 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월, 조금씩 느려지던 로미의 발걸음이 완전히 멈추었다. 

 

 

batch_사진02.jpg

 

즐거운 이별을 준비하자!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나는 많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운전대를 잡으면 손에 땀이 차오르고, 물속에 들어가면 숨이 가빠 온다. 사소한 말에 크게 상처받고, 아주 작은 실패조차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건 사랑하는 존재의 빈자리. 로미의 죽음이었다. 언젠가 다가올 로미와의 이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운전과 수영처럼 이별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이별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이별의 무게 중심을 나에게서 로미로 옮기자 금방 답이 나왔다. 로미에게 행복한 이별이란 무엇일까. 편안한 집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에게 사랑받다가 조용히 눈을 감는 것 아닐까.


이별을 고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선 이보다 행복한 이별이 또 있을까. 마지막까지 로미가 행복하다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별 아닐까. 남겨진 가족의 슬픔이 아니라 떠나는 여동생의 행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한결 편해졌다. 언젠가 로미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오면 즐거운 이별을 맞이하리라 다짐했다. 정말이지 이별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2021년 2월 14일, 일요일 오후, 청계천을 걷던 도중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에 한차례 진동이 느껴졌다. 뒤이어 두 번, 세 번, 네 번. 불규칙한 진동이 이어졌다. 가족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로미가 하늘나라로 갔어.`


로미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오랫동안 준비한 덕분일까. 로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전혀 슬프지 않았다. 종로 3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30분 동안에도 행복한 추억만이 떠올랐다. 마음이 무척 평온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설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밝은 목소리로 로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작은 상자 속에 누워있는 로미 위로 하얀 수건이 덮여 있었다. 자, 이제 즐거운 이별을 맞이할 차례다.


그런데 수건을 들치자마자 끈적한 눈물과 콧물이 쏟아져 나왔다.

 

 

batch_사진03.jpg

 

지붕 달린 집


로미가 나이 들어갈수록 집안에서 실종되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여동생은 항상 침대 아래나 소파 뒤편 등 먼지가 잔뜩 쌓인 곳에서 발견되곤 했다. 내성적인 로미에게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붕이 달린 집을 선물했다. 그리곤 로미가 지붕이 달린 집 안에 있을 때만큼은 웬만해선 건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여동생에게 준 선물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편히 쉴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다. 로미의 뺨에 뽀뽀를 하고 싶거나, 배방구를 불고 싶거나, 발바닥의 꼬순내를 맡고 싶을 땐 어김없이 지붕 달린 집 안으로 내 머리를 쑤욱 집어넣었다.


좁은 입구로 살짝 튀어나온 로미의 엉덩이도 참 매력적이었다. 양쪽 열 손가락을 구부리고 살금살금 다가가 로미의 엉덩이를 마구 주무르면, 녀석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긴 한숨을 내쉬고는 통통한 엉덩이를 집안으로 더욱 깊숙이 집어넣었다.


로미가 세상을 떠난 그날 밤, 한 줌의 재가 된 로미는 작은 항아리 속에 담겨 돌아왔다. 로미를 지붕이 달린 집 안쪽으로 깊숙하게 넣어 주었다. 항아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금세 다시 엎드려 앉았다.


나는 여전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잠에서 깨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향하는 길에도. 물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지붕 달린 집 앞에 엎드려 항아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디선가 로미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batch_사진04.jpg

 

그리운 너의 냄새


집안이 조용하다. 크흥- 하는 재채기 소리, 오독오독- 사료 씹는 소리, 짜박짜박- 발톱 소리, 부스럭부스럭- 쓰레기통 뒤지는 소리. 먕- 하고 뜬금없이 짖는 소리. 로미와 관련된 모든 소리가 단번에 사라졌다.


그런데 냄새는 그렇지 않았다. 로미가 즐겨 사용하던 방석을 집어 들자, 방석에 배어 있던 친근한 냄새가 코 주위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꼬릿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그 향기. 로미의 꼬순내였다.


로미의 꼬순내를 맡는 순간 로미가 여전히 내 품에 안겨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다시 느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감촉이었다. 지붕 있는 집 안에 머리를 들이밀던 그때로.


배꼽 방구를 불 때마다 느껴지는 냄새가. 입술에 느껴지는 따듯한 체온이. 뽀뽀가 싫다며 내 가슴을 밀어내는 두 앞발의 감촉이. 내 코웃음에 하찮게 살랑거리는 두상의 곱슬 털이.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토록 그리웠던 로미의 존재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냄새가 사라지며 이전보다 더 큰 그리움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방석을 집어 얼굴 아래로 가져갔다. 그때 등 뒤에서 엄마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미 많이 보고 싶니...?"


부끄러워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응`이라는 한 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려 했으나 힘을 주면 말보다 눈물이 먼저 쏟아질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한심한 모습을 들킨 이후로도 나는 방석을 포기하지 못했다. 여동생이 그리울 때마다 녀석이 즐겨 사용하던 방석을 찾았다. 로미의 존재가 느껴지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안타깝게도 로미의 냄새는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는 한 가지 핑계를 만들었다. 로미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 그날로 로미를 내 마음속에서 보내줘야겠다고. 시간이 흘러 로미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고 방석도 처분했다. 


2021년 12월 31일, 지금도 여전히 로미가 그립다.

 

 

batch_사진05.jpg

 

이별을 통해 깨달은 것들


로미가 가족 곁을 떠나간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 또 다른 반려동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제외한 가족.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도 반려동물 입양을 극구 반대하신다.


사랑하는 존재와 인연의 줄이 끊어지면 아픔은 행복의 크기와 비례해 찾아온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아픔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에 반해, 나는 가슴속에 남아있는 아픔을 또 다른 행복으로 치유하고 싶었다. 또 다른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새로운 사랑을 쏟아붓고 싶었다. 이는 그저 이별의 아픔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두 번째 이별을 연달아 맞이하며 내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겼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말과 함께 이별을 고했다.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2021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갔다.


'로미는 행복했을까.'


잔인하게도 행복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의 무게 중심을 나에게서 로미로 옮기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로미가 보기에 나는 좋은 오빠였을까. 로미도 행복했을까.


즐거운 이별을 맞이하자고 마음을 먹은 내가 그토록 울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로미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 자신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로미의 행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나는 스스로 진실된 마음만 갖고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연스럽게 상대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 행복만을 기준으로 관계를 바라본 참으로 이기적인 관점이었다.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었다.


상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웃으면서 기꺼이 보내주는 게 성숙한 사랑 아닐까. 그 슬픔이 죽을 것만큼 괴롭다면 그건 내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 상대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새롭게 정립되자 반려동물 입양에 대한 관점도 새롭게 바뀌었다. 함께 행복할 준비는 물론, 이별의 아픔을 감내할 준비까지 되었을 때 비로소 새 가족을 입양할 준비가 된 것이라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아지려고 노력하다가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자괴감에 무너지거나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기도 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언젠가 다시 반려동물을 입양하게 된다면 그때엔 꼭 즐거운 이별을 맞이하고 싶다. 저 멀리 있는 이별을 바라본 후 눈앞에 있는 행복으로 시선을 옮기는 여유가 생긴다면. 나와 함께 하는 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생각할 줄 아는 날이 온다면. 

 

 

글, 사진 이제원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어깨가 앞으로 쭉 끌려 나간다. 보폭은 총총 참새 걸음. 혹여나 너를 놓칠까 손목에 줄을 두어 번 감아보지만, 자유가 줄어든 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내 발끝이 너의 뒤꿈치를 따라잡으면 너는 어김없이 앞으로 뛰쳐나간다. 줄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어깨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진다. 너와 연결된 줄은 언제나 팽팽했다. 그런데 그 줄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게.     조금씩 느려지는 너의 발걸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팽팽하던 줄이 느슨해져 있었다. 축 늘어진 줄에 묻은 흙과 나뭇잎이 눈에 들어왔다. 줄을 잡은 손은 반동에 따라 앞뒤로 편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손에서 시작된 시선이 줄을 따라 로미의 목덜미에 다다르자, 그제야 늘어진 줄에 담긴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로미가 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로미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로미는 내 뒤에서 걷고 있었다. 뒤처진 로미는 나를 따라잡기 위해 발걸음을 바쁘게 재촉하면서도 거친 숨을 헐떡였다. 잠시 걸음을 멈추자 녀석이 엉금엉금 다가와 내 발밑에서 함께 멈췄다. 로미는 몇 번을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는 로미를 품에 안자 오른쪽 검지 손가락 아래로 요란하게 요동치는 심장이 느껴졌다. 18살 여고생 이로미. 사랑하는 내 여동생이 내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느리게 느슨해지는 줄처럼 로미의 발걸음도 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월, 조금씩 느려지던 로미의 발걸음이 완전히 멈추었다.        즐거운 이별을 준비하자!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나는 많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운전대를 잡으면 손에 땀이 차오르고, 물속에 들어가면 숨이 가빠 온다. 사소한 말에 크게 상처받고, 아주 작은 실패조차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건 사랑하는 존재의 빈자리. 로미의 죽음이었다. 언젠가 다가올 로미와의 이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운전과 수영처럼 이별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이별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이별의 무게 중심을 나에게서 로미로 옮기자 금방 답이 나왔다. 로미에게 행복한 이별이란 무엇일까. 편안한 집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에게 사랑받다가 조용히 눈을 감는 것 아닐까. 이별을 고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선 이보다 행복한 이별이 또 있을까. 마지막까지 로미가 행복하다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별 아닐까. 남겨진 가족의 슬픔이 아니라 떠나는 여동생의 행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한결 편해졌다. 언젠가 로미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오면 즐거운 이별을 맞이하리라 다짐했다. 정말이지 이별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2021년 2월 14일, 일요일 오후, 청계천을 걷던 도중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에 한차례 진동이 느껴졌다. 뒤이어 두 번, 세 번, 네 번. 불규칙한 진동이 이어졌다. 가족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로미가 하늘나라로 갔어.` 로미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오랫동안 준비한 덕분일까. 로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전혀 슬프지 않았다. 종로 3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30분 동안에도 행복한 추억만이 떠올랐다. 마음이 무척 평온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설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밝은 목소리로 로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작은 상자 속에 누워있는 로미 위로 하얀 수건이 덮여 있었다. 자, 이제 즐거운 이별을 맞이할 차례다. 그런데 수건을 들치자마자 끈적한 눈물과 콧물이 쏟아져 나왔다.       지붕 달린 집 로미가 나이 들어갈수록 집안에서 실종되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여동생은 항상 침대 아래나 소파 뒤편 등 먼지가 잔뜩 쌓인 곳에서 발견되곤 했다. 내성적인 로미에게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붕이 달린 집을 선물했다. 그리곤 로미가 지붕이 달린 집 안에 있을 때만큼은 웬만해선 건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여동생에게 준 선물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편히 쉴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다. 로미의 뺨에 뽀뽀를 하고 싶거나, 배방구를 불고 싶거나, 발바닥의 꼬순내를 맡고 싶을 땐 어김없이 지붕 달린 집 안으로 내 머리를 쑤욱 집어넣었다. 좁은 입구로 살짝 튀어나온 로미의 엉덩이도 참 매력적이었다. 양쪽 열 손가락을 구부리고 살금살금 다가가 로미의 엉덩이를 마구 주무르면, 녀석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긴 한숨을 내쉬고는 통통한 엉덩이를 집안으로 더욱 깊숙이 집어넣었다. 로미가 세상을 떠난 그날 밤, 한 줌의 재가 된 로미는 작은 항아리 속에 담겨 돌아왔다. 로미를 지붕이 달린 집 안쪽으로 깊숙하게 넣어 주었다. 항아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금세 다시 엎드려 앉았다. 나는 여전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잠에서 깨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향하는 길에도. 물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지붕 달린 집 앞에 엎드려 항아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디선가 로미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리운 너의 냄새 집안이 조용하다. 크흥- 하는 재채기 소리, 오독오독- 사료 씹는 소리, 짜박짜박- 발톱 소리, 부스럭부스럭- 쓰레기통 뒤지는 소리. 먕- 하고 뜬금없이 짖는 소리. 로미와 관련된 모든 소리가 단번에 사라졌다. 그런데 냄새는 그렇지 않았다. 로미가 즐겨 사용하던 방석을 집어 들자, 방석에 배어 있던 친근한 냄새가 코 주위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꼬릿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그 향기. 로미의 꼬순내였다. 로미의 꼬순내를 맡는 순간 로미가 여전히 내 품에 안겨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다시 느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감촉이었다. 지붕 있는 집 안에 머리를 들이밀던 그때로. 배꼽 방구를 불 때마다 느껴지는 냄새가. 입술에 느껴지는 따듯한 체온이. 뽀뽀가 싫다며 내 가슴을 밀어내는 두 앞발의 감촉이. 내 코웃음에 하찮게 살랑거리는 두상의 곱슬 털이.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토록 그리웠던 로미의 존재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냄새가 사라지며 이전보다 더 큰 그리움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방석을 집어 얼굴 아래로 가져갔다. 그때 등 뒤에서 엄마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미 많이 보고 싶니...?" 부끄러워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응`이라는 한 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려 했으나 힘을 주면 말보다 눈물이 먼저 쏟아질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한심한 모습을 들킨 이후로도 나는 방석을 포기하지 못했다. 여동생이 그리울 때마다 녀석이 즐겨 사용하던 방석을 찾았다. 로미의 존재가 느껴지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안타깝게도 로미의 냄새는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는 한 가지 핑계를 만들었다. 로미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 그날로 로미를 내 마음속에서 보내줘야겠다고. 시간이 흘러 로미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고 방석도 처분했다.  2021년 12월 31일, 지금도 여전히 로미가 그립다.       이별을 통해 깨달은 것들 로미가 가족 곁을 떠나간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 또 다른 반려동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제외한 가족.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도 반려동물 입양을 극구 반대하신다. 사랑하는 존재와 인연의 줄이 끊어지면 아픔은 행복의 크기와 비례해 찾아온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아픔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에 반해, 나는 가슴속에 남아있는 아픔을 또 다른 행복으로 치유하고 싶었다. 또 다른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새로운 사랑을 쏟아붓고 싶었다. 이는 그저 이별의 아픔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두 번째 이별을 연달아 맞이하며 내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겼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말과 함께 이별을 고했다.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2021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갔다. '로미는 행복했을까.' 잔인하게도 행복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의 무게 중심을 나에게서 로미로 옮기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로미가 보기에 나는 좋은 오빠였을까. 로미도 행복했을까. 즐거운 이별을 맞이하자고 마음을 먹은 내가 그토록 울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로미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 자신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로미의 행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나는 스스로 진실된 마음만 갖고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연스럽게 상대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 행복만을 기준으로 관계를 바라본 참으로 이기적인 관점이었다.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었다. 상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웃으면서 기꺼이 보내주는 게 성숙한 사랑 아닐까. 그 슬픔이 죽을 것만큼 괴롭다면 그건 내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 상대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새롭게 정립되자 반려동물 입양에 대한 관점도 새롭게 바뀌었다. 함께 행복할 준비는 물론, 이별의 아픔을 감내할 준비까지 되었을 때 비로소 새 가족을 입양할 준비가 된 것이라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아지려고 노력하다가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자괴감에 무너지거나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기도 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언젠가 다시 반려동물을 입양하게 된다면 그때엔 꼭 즐거운 이별을 맞이하고 싶다. 저 멀리 있는 이별을 바라본 후 눈앞에 있는 행복으로 시선을 옮기는 여유가 생긴다면. 나와 함께 하는 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생각할 줄 아는 날이 온다면.      글, 사진 이제원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